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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2023.10.13.(금) 성경 : 창세기 2:20~24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 아담을 '돕는' 배필을 위하여 아담의 갈빗대에서 아내 '하와'를 만드셨는데 아담이 이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23절)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만큼 절실한 사랑과 의지의 표현이다. 사람은 그렇게 서로 기대어 산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의지하고, 장년이 되면 배우자가 서로 돕고, 늙어지면 자식이 봉양하는 것이다. 누구든 혼자서는 스스로 살 수 없음을 뜻하는데 세상은 항상 법칙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조실부모하는 사람도 있고 배우자와의 이혼이나 사별도 있으며 나이 들어도 젊은 자녀들이 서로 모시기를 기피하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이 영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

큐티 2023.10.13

에덴 동산

2023.10.12.(목) 성경 : 창세기 2:1~19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에덴이라는 동산에 두셨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9절)가 즐비한 낙원에 사람으로 하여금 "경작하며 지키게"(15절) 하셨다. 그냥 하나님이 먹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고 관리하게 하셨음에 주의하자. 성경의 복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편128:2)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고난은 수고한 만큼 거두지 못한데서부터 시작된다. 에덴에서의 형통은 그냥 놀고 먹는 것이 아닌 "경작"하며 그것을 "지키는" 의무 가운데 이뤄졌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

큐티 2023.10.12

하나님의 형상

2023.10.11.(수) 성경 : 창세기 1:24~31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다. 그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27절)으로 창조되었고 그들은 복을 받는 존재들로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는 사람들이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28절) 존재들이었다.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후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으니 세상은 사람을 위하여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상징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고집하며 사니 죄가 세상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큐티 2023.10.11

질서와 조화

2023.10.10.(화) 성경 : 창세기 1:11~23 천지창조가 어떻게 이뤄졌을까... 성경의 맨 첫장에서부터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집마다 지은 이가 있듯이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히3:4)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요 천하는 그 말씀 앞에 순종을 함으로 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1장의 대표적 표현인즉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하는 말과, 그 말씀 "그대로 되니라"는 것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이뤄진 것이다. 오늘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은 듣고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고 스스로의 내 인생 또한 복된 은혜로 이어지는 줄 믿는다. 지금의 내 신앙생활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

큐티 2023.10.10

천지창조

2023.10.09.(월) 성경 : 창세기 1:1~10 천지창조 전의 모습은 모든 것이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의 상태였다. 이에 하나님은 먼저 '빛'을 창조하시니 흑암은 물러가고 혼돈과 공허는 질서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낮과 밤이 그때부터 시작되고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으며 하늘의 물과 천하의 물이 모여들었다. 창조하시는 대로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먼저 창조받아야 하지 않을까 기도한다. 그래서 내 안의 혼돈과 어둠의 세력이 말씀의 빛으로 다 사라지고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에 계시고 나는 땅 위의 유한한 인간임을 알고 사는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일까, 하나님의 근심이 되어 있을까.... 말씀의 빛 앞에 다시 한번 자신의 ..

큐티 2023.10.09

금대접의 향

2023.09.26.(화) 성경 : 계시록 5:1~14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7절). 이 말씀이 참 위로가 된다. 주님은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시는데 이제 주님이 온 세상의 통치권과 권한을 부여 받으셨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바로 성도들의 기도' 라는 것이다.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듯이 때로는 신앙의 회의나 아픔도 있을 수 있다. 성도는 그러한 때 더욱 기도하게 되는데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금 대접'에 보관되는 것이라 하니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

큐티 2023.09.26

하늘에 열린 문

2023.09.25.(월) 성경 : 계시록 4:1~3 요한은 세상의 장래에 대하여 "이 후에 마땅히 될 일"(1절)에 대하여 주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이 땅에 세워질 적 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로 말미암아 겪게 될 환난, 그리고 최후 심판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세상이 끝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조금도 가감 없이 성취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또 1절의 시작은 "이 일 후에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고 한다. 지금도 천국 문은 열려 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말이다. 하지만 문이 열렸어도 아무나 볼 수 없고 들어갈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도 드물다. 계시록에는 자주 "귀 ..

큐티 2023.09.25

풍성함의 유혹

2023.09.22.(금) 성경 : 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는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로 상권이 크게 발달했고 땅도 기름져 농사나 목축에도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풍요의 상징이다. 그래서인가? 그곳 교회도 부족함이 없으니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절)고 할 정도이니 인생이 평생 바라던 기쁨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가 없고, 부족함이 없으면 그곳을 천국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여기가 좋사오니"(마17:4)라고 하면서 더 이상의 진전과 발전을 외면한다. 그렇게 주저 앉아버린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시는 주님의 책망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15절)는 것이었다. 라오디게아는 다 풍성하였지만 식수 ..

큐티 2023.09.22

칭찬받는 믿음

2023.09.21.(목) 성경 : 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칭찬만 받은 귀한 교회였다. 그 칭찬은 1)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킨 교회요, 2)배반하지 않았으며(8절), 3)인내로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다(10절). 이것은 사람이 아닌 주님의 평가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에서 사회에서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주님 앞에 어떤 믿음의 사람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살자. 특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하였는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큰 능력이 아닌 '적은 능력'이라 했으니 아주 평범한 교회였다. 그럼에도 환난의 위기에서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베드로처럼 쉽게 주의 이름을 배반하는 실수를..

큐티 2023.09.21

사데 교회의 교훈

2023.09.20. (수) 성경 : 계시록 3: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1절)란 말은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일곱 교회 모두에게 공통된 표현이다. 주께서 '아신다"는 것은 내 형편과 시험거리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기도로 극복하는 나를 아신다는 것이니 위로와 힘이 되며 동시에 나의 잘못된 부분까지도 알고 계시니 곧 심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지금 형편은 주님께서 아셔야 할까 모르시는 편이 나을까... 본인만이 알고 있다. 사데교회에 대한 주님의 아심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1절)였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내 믿음의 형편을 헤아려 봐야 할 대목이다. 입으로, 외모로는 믿음의 사람 같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으로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닌지 주님의 평가 앞에 스스로 냉철해져야 ..

큐티 20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