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잠잠하라 고요하라

petra7 2021. 5. 3. 09:17

2021.05.03.()

성 경 : 마가복음 4:35~4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셔서 가는 길에 '큰 광풍' 이 들이닥쳐 배가 침몰의 위기에 빠졌다. 주님이 주관하시니 그대로 따라하는데 왜 '광풍'이 오는 것일까? 더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주님은 주무셨다고 한다. 광풍 속에서도 주님은 온전한 '평안'을 누렸음이요,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 하며 다급하게 부르짖는 제자들에게는 그 평안이 사라졌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위기에서는 흔들리지 않겠는가? 이에 예수님은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39)고 하시니 아주 잔잔하여졌다고 한다. 아울러 제자들에게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0)고 하셨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또한 무서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위기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를 '믿음이 없다'고 지적하셨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인데 나는 과연 믿음이 없을까? 믿음의 삶을 살기에 주일이면 교회 나가서 예배도 드리고 종종 큐티와 기도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전혀 신앙이 없거나 어쩌다 교회 나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믿음은 엄청 큰 것 같다. 그런데 '큰 광풍'을 만나면 그 자신만만해 하던 믿음이 온데간데 없어진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님 같은 능력이 없어서이다.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은 오직 주님 뿐이시다. 그러니 그들의 놀람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41)는 것이었다. 세상 천지에 누가 바람과 바다조차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은 물론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이기에?"... 그는 곧 주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증거이다.

나는 광풍을 꾸짖을 수 없고 잠잠케 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러나 "제자들이 깨우며 ...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하는 말처럼 주님을 깨울 수는 있다. 주님이 광풍을 만난 우리를 아시면서도 과연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제자들은 '깨웠다'는 말을 한다. 그것이 우리의 부르짖음이다. 주님이 가자해서 순종하고 가는 길인데도 광풍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자. 나는 그만큼 약하고 유한한 인생이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간절한 부르짖음이다. 그 부르짖음이 주님을 깨우든 아니 깨우든 주님은 알고, 보고 계실 것이다. 나의 부르짖음이, 나의 간절한 기도가 내가 처한 이런 환경에서 창조주이신 주님의 능력을 경험케 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를 간구해보자.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주님  (0) 2021.05.05
더러운 귀신 들린 자  (0) 2021.05.04
겨자씨의 비유  (0) 2021.04.30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0) 2021.04.26
나는 주님을 꼭 필요로 합니다  (0) 2021.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