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petra7 2022. 10. 14. 07:57

2022. 10.14. ()

성경 : 사도행전 15:28~41

  본문은 2차 선교여행 때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 시작하는 말인즉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36)고 하였다. 이에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하였는데 바울은 전에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할 것 같은, 큰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어찌된 판인지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39)라고 하였다.

사실 바울은 사도 바울이 되기 전에는 예수 핍박자 사울이었고 훗날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 사람이 180도 바뀌어 예수 전도자가 된 사람이다. 그러나 워낙 전에 했던 일이 잔인하고 두려움의 대상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의 회심과 변화를 믿지 못했다. 바로 그때 사울을 온전히 소개하고 신원보장까지 철저히 함으로 보살펴 주었으니 바나바야 말로 사울의 스승이요 큰 은혜를 끼친 귀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바나바에게 대들고 심히 다툴 정도까지 되었으니 바나바의 난감한 마음을 백번 공감하고도 남는다. 무슨 교리 문제도 아니고 복음을 잘못 해석하는 일도 아닌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고 하는 사람을 2차 선교여행에 데려가자는데 크게 다투었다는 것은 영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 마가는 어려운 선교활동 때에 자기들을 떠난 사람이기에 바울로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바나바는 회심한 사울조차 온유와 이해로 충분히 받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정도로 좋은 면을 강조했으니 참 온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사건도 성격 유형이 다르다보니 싸운 것이 된다. 그럼에도 결론은 각자 흩어진 위치에서 교회들을 방문하여 굳게 세워 줌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41)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것 까지 감안하시어 과연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뤄나가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다툼이나 분열이 있을 수 있는데 가능하면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나도 그런 일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진실된 신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자.

 

본문은 2차 선교여행 때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 시작하는 말인즉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36)고 하였다. 이에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하였는데 바울은 전에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할 것 같은, 큰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어찌된 판인지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39)라고 하였다.

 

사실 바울은 사도 바울이 되기 전에는 예수 핍박자 사울이었고 훗날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 사람이 180도 바뀌어 예수 전도자가 된 사람이다. 그러나 워낙 전에 했던 일이 잔인하고 두려움의 대상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의 회심과 변화를 믿지 못했다. 바로 그때 사울을 온전히 소개하고 신원보장까지 철저히 함으로 보살펴 주었으니 바나바야 말로 사울의 스승이요 큰 은혜를 끼친 귀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바나바에게 대들고 심히 다툴 정도까지 되었으니 바나바의 난감한 마음을 백번 공감하고도 남는다. 무슨 교리 문제도 아니고 복음을 잘못 해석하는 일도 아닌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고 하는 사람을 2차 선교여행에 데려가자는데 크게 다투었다는 것은 영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 마가는 어려운 선교활동 때에 자기들을 떠난 사람이기에 바울로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바나바는 회심한 사울조차 온유와 이해로 충분히 받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정도로 좋은 면을 강조했으니 참 온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사건도 성격 유형이 다르다보니 싸운 것이 된다. 그럼에도 결론은 각자 흩어진 위치에서 교회들을 방문하여 굳게 세워 줌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41)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것 까지 감안하시어 과연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뤄나가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다툼이나 분열이 있을 수 있는데 가능하면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나도 그런 일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진실된 신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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