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과부의 헌금

petra7 2021. 6. 11. 09:09

2021.06.11.()

본문 : 마가복음 12:38~44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율법에 전문가이거나 높은 직위의 관리들로 주로 바리새파 사람들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38~39) 사람들이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40)라 하였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쥔 사람들인데 가장 불쌍하고 가련함의 상징인 '과부'의 가산을 삼킬 만큼 물질에 욕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을까?

뿐만 아니라 '외식'으로 기도를 길게 하는 자들이라 했는데 참 가증스러운 일이다. 내용이 많아서 긴 것이 아니라 남이 들으라고 마치 설교하고 가르치듯이 온갖 소리들로 중언부언했을 것이다. 또 '긴 옷'을 입고 다녔다는데 이는 권위의 상징이다. 말씀을 통한 경건에서 나오는 권위가 되어야지 화려한 색상의 가운 같은 옷을 입고 가짜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지금도 참 많다

반면 예수님은 한 과부가 드리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의 헌금에 주목하면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고 하셨다. 지금의 화폐 가치로는 천원 정도에 불과하나 주님은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44)고 하시면서 서기관과 한 가난한 과부라는 두 종류의 사람을 놓고 비교하면서 교훈하셨다.

서기관들은 여러 사람들이 드리는 헌금으로 성전도 관리하며 율법의 확산을 위하여 나름 노력하며 필요한 경비들을 소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지적은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라고 하실 정도로 함부로 소비했던 것 같다. 그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장본인들이 아니었던가? 지금도 드려지는 예배의 헌금 하나 하나가 얼마나 어떤 사연과 정성으로 드려지는지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서기관 같은 위선이나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교만은 남아있지 않는지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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